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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9/29, 2007)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특히 서양인)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질문을 받은 외국인이 내놓아야 할 답은 정해져 있다(답정넌이냐). 한국인의 뛰어난 두뇌와 눈부신 경제발전에 감탄하고, 정이 넘치는 이웃들에 감동받고, 김치와 된장을 즐겨 먹고, 자연과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야 한다. 쓴소리 한두 가지 할 수도 있지만, 결론은 ‘멋진 나라 한국과 정 많은 한국인을 사랑합니다’여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이 한국이 멋진 나라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을 뿐인 것 같다. 이다 도시나 로버트 할리 같은 외국인 방송인들은, 남다른 문화적 배경을 드러냄으로써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고 싶어한다는 제스처를 통해 ‘기특한 외국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랑받았다. 우리가 접하는 외국인들의 유형과 외국 문화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지만, 한국인-한국 문화와 외국인-외국 문화의 소통은 여러 고정관념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스콧 버거슨은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나름대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정관념 따위엔 관심이 없다. 방송에 출연해 재롱떨거나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 책을 펴내는 외국인의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영원한 우방’ 미쿡 출신에 나름대로 많이 배운 문화비평가이면서, 어려서부터 히피 문화의 세례를 받은 자유인이자 포스트모더니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관심과 거처는 한국 또는 아시아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으며, 매스미디어의 담론 유통 체계에 대항하는 1인 미디어 Zine의 신봉자이자 발행자이다. 그는 한국 관광 브로셔에 뭐가 나오는지 참고하지 않는다. 한국 아줌마들의 punk함을 발견하고, 도시를 빼곡히 채운 마천루에서 가련한 도시 남자들의 남근 콤플렉스를 읽어내고, 자판기 커피와 사랑에 빠지며, 고궁도 좋지만 종로 뒷골목의 오래된 요정도 사랑한다. 그리고 우주적 접신의 마법사 ‘신바람 이박사’의 최초 발굴자이다. 올~

 

그의 글이 매력적인 것은, 한국 사회의 기이한 점, 매력적인 점, 불쾌한 점들을 독창적으로 재설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때로 동의하지 못할 내용이 있기도 하고, 너무 가볍거나 너무 현학적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쾌하고 신선하다. 저자의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읽는 동안 기본적으로 유머에 대한 감수성을 유지하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책이 농담과 독설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진지하게 문화이론을 펼쳐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도 괜찮은 것 같다.

 

책을 처음 읽었던 2007년 기준으로, 난 그가 한국에 대해 쓴 한국어판 책은 전부 읽었었다. ‘맥시멈 코리아’, ‘발칙한 한국학’에 이어서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선정적 제목의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위시리스트를 선점한 수많은 책들을 제치고 바로 구입했다. 유쾌하고 부담없이 통찰력 있는 글을 보고 싶어서였다. 근데 머리글에서부터 유쾌하다기보단 까칠해졌다는 느낌이 확 들더군. 예전엔 이 사람이 저속하고도 놀라운 우리 사회 틈새에서 보석을 발굴하는 걸 즐기고 있다는, (무조건적이진 않지만)기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한국에 대해 쓰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대놓고 욕을 하면서 신경질 부리고 있더라구. 흠, 어쩌면 혼자 고상한 척하면서 뭔가를 비판하기보단, 덜 위선적이기 위해서, 일부러 자기의 저속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투덜거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한국에 이리 넌덜머리를 내는 이유는, 한국의 모두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빠져 끝간데 없이 저속해지고, 바로 그의 모국인 미쿡과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정할 수 없잖아. 씁쓸한 가운데, 내가 변태라서인지는 몰라도 외국인의 '우리나라'에 대한 신랄한 비난에 불편함보다는 후련함이 앞섰다. 전작들과 같은 유쾌함을 유지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스콧 버거슨이 요즘은 뭘 하나 궁금해져서 검색해 봤더니, 2009년에 '더 발칙한 한국학'이라는 책을 다른 저자들과 함께 냈다고 한다. 근데 외국인들이 한국에 살면서 겪은 안좋은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2008년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비난했다고 한다. 으아니?! 촛불시위 당시에는 그걸 옹호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마 한국 사회 전반에 넌더리가 난 데다, 군중의 단체 행동에 파시즘 같은 걸 자동적으로 연상하고는 거기에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통찰에 기반한 비판이기보다는 동어반복적인 짜증의 표출인 것 같아서, 아쉽다. 이 사람이 한국에 대한 글을 더 쓸 것 같지도 않지만 쓴다 하더라도 읽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책('대한민국 사용후기')의 글들 일부는 괜춘하다능.


 

<기억하고 싶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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