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실 진단부터 해보자. 우리가 겪고 있는 작금의 위기는 폭과 깊이 면에서 어느 정도나 심각한 수준인가?
=정태인(이하 정): 경기순환의 맨 밑바닥이다. 파생상품에 얽힌 자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부실자산을 정리할 ‘배드뱅크’를 만든다 해도, 정확한 부실자산의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국제정치적으로 미국 패권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 다음 패권을 누가 쥐게 될지도 불분명하다. 위기에서 가까스로 빠져나간다 해도 에너지 가격 급등이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기후변화도 한계에 도달해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넘어 그 이상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대혼돈의 시기가 올 것만은 확실하다.
=우석훈(이하 우): 20세기의 역사를 돌아보자. 1929년 대공황으로 수정자본주의가 생겨났다. 1970년대 초반 제1차 석유파동이 나면서 케인스식 수정자본주의는 ‘영광의 30년’을 마감했다. 1980년대 이후 대처리즘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제무역 질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그 체제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100년을 한 사이클로 봤을 때, 세 번째 다가온 근본적 위기다.
위기를 맞으면 이른바 ‘레짐’(체제)이 바뀌게 된다. 첫 번째 위기 때는 케인스의 이론이 있었고, 두 번째 위기 때는 하이에크의 이론이 있었다.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선 이론을 내놓은 사람이 없다. 근거가 있건 없건 다들 한마디씩 하고는 있는데, 세계 자본주의가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한 이론가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홍: 현 경제위기는 물질적 차원을 넘어 사회와 경제의 조직원리 차원으로 확대돼 있다. 지난 30~40년 동안엔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합의된 경제원리였다. 시장원리를 통해 균형이 만들어졌을 때 가장 뛰어난 사회적 조직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회철학이 지배한 시기였다. 그 정점이 바로 금융시장이었다. 금융시장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면, 사회 전체가 가장 완벽한 균형 상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번 위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파생상품 때문에 나온 것이고, 그것이 어마어마한 부채가 돼 지구촌을 누르고 있다. 지난 30~40년 동안 지구촌을 지배해온 시장 우위라는 틀이 논리적으로 파산한 셈이다. 시장이 완벽하지 않다면 경제와 사회를 다시 어떻게 조직해야 할 것인가? 내놓을 만한 대안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는 지적인 위기이기도 하다. 주주 가치 경영의 창시자라 할 잭 웰치도, 지난 10년간 영국의 재무장관을 맡으며 지구적 금융 체제의 설계를 주도했던 고든 브라운도 자신들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바를 완전히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쪽에 1930년대의 마르크스 경제학이나 케인스주의 등과 같은 대안적인 지적 틀이 준비돼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현재의 지적 위기는 더욱 깊어진다.
=정: 지금 지구촌이 겪고 있는 위기는 기실 미국 경제가 예전부터 스스로 예고해온 바다. 1980~90년대 저축대부조합(S&L) 사태나 2001년 말 터져나온 엔론 사태가 전조였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금융시장에 제동을 걸었어야 하는데, 되레 규제 완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한없이 파장이 커지고 말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선언했고, 위기의 원인 제공자라 할 수 있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마저 자신의 경제학이 틀렸음을 고백했다. 아직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시장만능론에 미련을 가지고 있지만, 위기의 장기화가 곧 이들이 틀렸음을 증명할 것이다.
-사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케인스주의적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케인스주의적 해법이 대안이 될 수는 없을까?
=우: 한동안 케인스 해법이 신자유주의 방식의 대안으로 거론되기는 할 것인데, 45~75년의 30년 기간처럼 전면적인 수요 진작에 의한 ‘대량생산 대량소비’ 방식의 포디즘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생산 방식 자체가 포디즘에서 탈포디즘으로 이행한 상태이고, 여기에 생태적 제약조건이 걸려 있으며, 국가의 작동 방식도 훨씬 다원화된 상태라서, 전성기 때의 케인스의 발전모델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월스트리트 금융질서를 제압하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나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 의장 등은 ‘월스트리트의 자식들’로 부를 만하다. 이들을 데려다 금융 개혁을 하려다 보니 굉장히 미적거리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위기를 맞아 기득권층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오바마가 루스벨트보다 불리한 것은, 루스벨트는 미국 패권 확립기에 집권했기에 개혁의 성공에 대해 곧바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돼 있었지만, 오바마는 미국 패권 쇠퇴기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달러와 함께 유로나 아시아 통화가 공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영국이 과거에 그랬듯이 미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금융 마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공적자금이 무한정 들어가고 있는데, 시간이 흘러도 부실채권이 스스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부실채권을 매입할 투자자를 모은다는 게 가이트너나 버냉키의 해법인데 부실채권의 규모를 몰라서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가 투자를 할까. 방법은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정부가 기준을 정해 부실채권을 빨리 정리하는 것뿐이다. 또한 새로운 금융규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설계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이래저래 위기는 길어질 것이다.
다만 그린 뉴딜은 획기적인 발상이다. 특히 스마트 그리드와 단열재 시공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계획이라면 일자리도 꽤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에 민간의 돈이 투입되도록 하기 위해 파생상품 시장을 만든다면 그건 또 하나의 혼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홍: 케인스 얘기가 새삼 나오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지금 미국의 경제학자 가운데 케인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다. 케인스 경제학 하면 무조건 정부가 나서 돈을 푸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물론 케인스의 사상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기류는 이른바 ‘트리클다운’(부유층과 거대기업에 대한 감세와 규제 완화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 저소득층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주장) 이론과 결합될 위험이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가장 필요로 하는 급소에 돈을 풀어야 하는데, 무조건 은행과 GM 같은 거대기업에 돈을 풀어 금융자본과 대기업만 안정시키면 된다는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오바마 정권이나 조지 소로스 등이 생각하고 있는 녹색 뉴딜을 통한 경기 회복도 아직 불투명하다. 무엇보다도 녹색 담론이라는 것이 아직도 재난 담론의 성격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90년대 말의 닷컴 붐과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꼭 그런 식인 것은 아니다. 긴급 편성한 경기부양 자금 8천억달러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몫도 있고, 의료보험 개혁용 예산도 그렇다. 이런 건 이명박 정부와는 정반대다. 금융 부문의 위기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현재는 일종의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다. 어느 정도 금융위기가 지나가면 전세계가 동시에 불려놓은 유동성 때문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생길수도 있다. 특히 유가와 곡물가가 위험하다.
-사회: 현실 진단도 그렇고 해법도 그렇고 온통 불확실성뿐이다. 폴라니 얘기를 해보자. 이론과 정책 측면에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영감을 주는 게 있을 텐데.
=홍: 폴라니의 핵심 명제는 인간 세상의 만물이 상품화하고 있다는 거다. 뒤집어 얘기하면, 돈이 안 되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폴라니가 경고한 건 딴 건 몰라도 사람·자연·화폐까지 상품화했다가 이게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면 사회 자체가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실제 사회가 무너질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이나 화폐, 자연이 알아서 먹고살아야겠다고 자기 길을 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회가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말하자면 큰돈이 돌 수 있는 판을 만들어내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거다. 4대강 사업도 그렇고 영리법인을 뼈대로 한 의료 민영화 움직임도 그렇다. 이는 폴라니적 의미의 ‘상품화’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세상 만물을 모두 투자자가 돈을 투여해 더 많은 돈을 뽑아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사실상 ‘투자자 독재’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폴라니는 이런 게 부도덕한 것을 넘어 ‘유토피아’에 불과하다고 봤다. 실현이 불가능한 주장이란 얘기다. 인간·자연·화폐까지 상품화하면 사회가 견뎌내지 못하고 사달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과 의료 민영화 추진은 물론, 교육도 ‘비즈니스’로 바꿨고 금산분리를 완화해 금융시장도 돈 놓고 돈 먹는 판으로 만들었다. 폴라니가 말한 만물의 상품화와 투자자 독재의 끝이 어떤 모습인지는 현 지구촌 경제위기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 어떻게 보면 폴라니는 그동안 경제학이 놓치고 있던 사회적 요소 혹은 총체성에 관한 또 다른 지평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시기가 비경제적 요소들도 경제적 요소로 환원시켜서 화폐나 금리 그리고 수익성 같은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라면, 폴라니 시스템은 그러한 경제적 요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요소들을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 재화와 서비스를 가능한 한 많이 누리는 것, 즉 성장이 곧 행복(welfare)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사고를 뒤집어야만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기실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였던 마르크스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현대의 마르크스주의는 주류 경제학의 환경경제학(environmental economics, 예컨대 탄소배출권 같은 해법)을 뛰어넘는 생태이론을 모색하고 중앙 계획이라는 수단이 그린 뉴딜과 같은 정책을 단숨에 실행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과거의 실천이 보여준 것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대위기를 맞아 1930년대의 경험을 들춰보다가 폴라니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굳이 얘기하자면 케인스 역시 이성의 힘이 가져오는 생산력 발전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적절한 조정이 이뤄지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선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굳게 믿을 만큼 그는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폴라니는 시장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천성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30년대에 이미 꿰뚫었다. 그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재생에너지와 안전한 먹을거리가 그다지 넓지 않은 범위에서 호혜적으로 배분되는 지역 공동체를 능히 그려낼 수 있다. 호혜성(reciprocity)이야말로 우리가 내면 깊숙이 원하고 있는 생명복지(lifare·생명을 뜻하는 life와 복지를 뜻하는 welfare의 합성어로 정태인 교수가 만든 표현)의 원리일 것이다. 전기·가스·철도·우편 등 근거리를 넘어서는 전국적 네트워크, 그리고 교육·의료·주거 등 필수재는 국가가 재분배(redistribution)의 원리에 입각해 최대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도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녹색 가치는 철두철미하게 관철돼야 한다. 말하자면 ‘녹색 공공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회: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폴라니가 줄 수 있는 교훈을 얘기해보자.
=우: 이명박 독트린은 고용과 복지에는 거의 흉내만 내는 단기 대책이고, 진짜 장기 대책은 10년씩 사업 기간이 되는 4대강 정비 등 토목사업 등에 집중돼 있다. 건설을 단기 대책으로, 복지를 장기 대책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케인스식 재정정책과는 장·단기의 배치가 반대인 셈이다.
=홍: 경제는 형식과 실질로 나눌 수 있다. 형식은 화폐로 표현되고, 경제적 범주는 무역량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실체는 바로 사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지만 투자자는 돈을 풀지 않는다. 기업도 고용을 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투자를 하지 않고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화폐경제, 형식경제가 실질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애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살림하고 살아가는 데 굳이 투자자가 돈 풀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시장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모든 걸 상품으로 바꿔 팔 수밖에 없지만, 폴라니가 말한 ‘호혜성’에 기댄다면 달라질 수 있다. 두 집단이 뭔가 주고받을 때, 사회적 신뢰나 구조를 바탕으로 화폐란 매개가 없이도 노동과 재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국가기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제행위의 목적은 투자자의 돈을 불려주는 게 아니라 나라 전체의 번영이나 국민의 행복과 안녕이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투자자가 돈을 풀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실질적 경제가 가능하다고 세뇌당해왔다. 이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일자리나 먹을거리 문제도 풀 수 있다. 이젠 시장이나 투자자에 의지해야 인간의 삶이 가능하다는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 미국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나라다. 서유럽의 스웨덴이나 스위스·독일 등을 보면, 폴라니가 말한 ‘사회적 경제’가 국민경제의 10~20%를 차지한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적지 않다. 생산협동조합 형태로 많이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호혜적 경제’란 게 실제 존재한다. 우리도 1990년대까지 ‘곗돈’ 문화가 있었고, 품앗이도 있었고, 계층 간 연대도 존재했다. 이런 호혜적 문화가 사라진 게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유럽은 예전부터 존재해온 이런 관계를 근대화시킨 거다.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재창조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지속된다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차원의 공황으로 갈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본다. 이럴 경우 호혜성을 확대해나가면서 살아가는 게 한 가지 길일 테고, 저생산과 인플레이션이 높은 중남미처럼 일종의 파시즘 형태에 가깝게 가는 길도 있을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파시즘이 발호했다.
정답은 없다. 열려진 길이다. 케인스의 시대는 권모술수의 시대였다. 공무원이 사회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선 군부 엘리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이에크의 시대엔 최고경영자(CEO)가 사회적 영웅이 됐다. 기업 경영자와 펀드매니저가 존경받는 시대였다. 그 끝에서 우리 사회는 CEO 출신 대통령을 선택했다. 폴라니가 상정한 시대엔 성직자와 사회활동가, 예술가가 대접받는다.
=정: 이명박 정부로선 건설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공급 과잉 상태에서 더 많이 지으면 어떻게 될까? 가격 폭락이 일어나 우리 내부에 있는 금융 문제,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100조원 규모), 부동산 가계대출(가계대출의 30%라면 200조원 규모)이 폭발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론 공급을 늘리면서 한편으론 투기 수요를 최대한 부추기고 있다. 현재 상태에서 투기 버블을 일으키는 것은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그 다음해쯤 대폭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마이너스 1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전세계가 모두 침체에 빠져 있는데 나 홀로 버블이 지속될 수는 없다.
복지를 확충해야 하는데 거꾸로 현재의 네트워크 산업이나 의료를 민영화하려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1년에 재정적자가 20조~30조원씩 날 텐데 세금을 더 거두거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적자를 메우는 방법이 공기업 민영화다. 전기·가스·철도·물·우편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세금을 투입해 일시적으로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 건강보험을 무너뜨리는 영리법인화, 병원 당연지정제 폐지 등을 꾀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의 생활은 물론 생명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사회: 한국 경제가 특히 위기에 취약한 이유는 뭔가?
=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유효수요 부족이다. 내수가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 돈이 전부 부동산과 증권으로 몰리고 있다. 부동산과 증권이 경쟁한 게 지난 10년 세월이다. 한국 금융자산에서 연기금이 제일 큰데, 이게 증시로 흘러들어가 죽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가 부동산을 포기할 수 있을까? 현 집권세력은 그렇게 못할 것이다.
결국 아래로 향해야 할 돈 상당 규모가 부동산·건설족에게 갈 것이다. 그리로 들어간 돈은 거기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혁신 능력이 워낙 떨어져 있으니 신상품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버블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결국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더욱 협소해질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 우리도 따라간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시나리오일 텐데, 국제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는데다 국내 자본의 내부 모순까지 더해진다면 한국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게 뻔하다.
=정: 내수가 적은 건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내구 소비재부터 줄이기 마련이다. 선진 각국에서 내구 소비재 소비를 줄이면 수출로 버텨온 한국 경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건설을 빼고는 내수랄 게 없으니, 이명박 정부로선 이쪽을 유일한 살길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로 가면 버블은 언제든 붕괴할 수밖에 없다.
=우: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돌봄 노동’을 인정하고, 이를 수행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정부가 돈을 대준다. 한국에선 이를 기업화하려 하고 있다. 사교육 업체가 코스닥에 상장됐을 때, 한국의 서비스 부문 기업화가 갈 데까지 갔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교육 업체가 증시에 상장된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밖에 없다. 이제 고용이나 육아의 상품화가 기다리고 있다. 유럽은 사회적 경제 영역에 두고 있는 것을 우리는 기업의 영역으로 보내지 못해 안달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사회: 보수 진영엔선 ‘선진화 전략’을 말한다. 선진국이 되면 경쟁이 치열해도 국가 경제가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몇 년 고생해서라도 빨리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주장인데.
=우: 형식논리적으로야 가능하지만, 실제론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우리 사회가 안에서부터 붕괴될 것이다. ‘사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고찰했어야 한다. 사람은 먹여만 준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 해체 과정에 급격한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일본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부 시절 우정국 민영화를 밀어붙인 여파로 니트족(직업이 없고 직업을 구할 생각도 없으며 진학도 하지 않고 직업교육도 받지 않는 사람)이나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 문제가 악화하면서, 영원히 집권할 줄 알았던 자민당 정권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가 너무 오른쪽으로 가다 보니 기존 보수파가 더욱 오른쪽으로 가게 된 것 같다. 역설적인 게 우리나라에서 복지사회를 처음 말한 게 독재자 전두환이다. 의료보험의 뼈대도 그때 만들어졌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이뤄지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공적 장치가 해체되는 거다. 오바마의 미국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셈이다.
=홍: 보수 진영의 경제 담론의 비현실성이 완전히 폭로되는 대목이다. 그런 주장의 골자는, 세계 경제의 노동 분업의 위계 구조에서 가급적 높은 자리를 점해 거기에서 나오는 우위를 이용해 이른바 ‘공동체’에 해당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그 세계 경제의 위계 구조가 근본부터 흔들리면서 그들이 타깃으로 삼았던 ‘금융 허브’니 ‘서비스 경제’니 하는 게 대몰락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아일랜드·두바이 등의 현 상태를 보라. 단순한 현실적인 파산일 뿐이 아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지난 30년간 이뤄져온 지구 경제의 위계 구조를 정당화하던 이론적·지적 배경이 급격히 바뀌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내가 보기엔 현 정권이나 보수 진영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져 마땅하다. 그래도 이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이른바 ‘인지 구조의 모순’이 벌어지는 게 두려워서 하던 일을 더욱 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정부가 내걸고 있는 ‘위기를 기회로’라는 구호의 성격이다.
=정: 이 정부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정부다. 미국이 지금 위기의 모든 걸 보여주지 않나. 그런데 이 정부는 위기를 빌미로 시장만능 정책을 더 강화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켜서 반영구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트리클다운’ 경제학은 전세계 어디서도 실현되지 않았다. 박병원 전 경제수석이 물을 무서워하면 수영을 배우지 못한다며 금융 자유화 등 이른바 선진화 전략을 계속 추구하려 하는데 그건 수영 배우는 일이 아니다. 이미 난파선으로 판명난 배에 전 국민을 끌고 올라타는 것이다.
-사회: 폴라니가 대안 체제의 기초로 언급한 게 이를테면 소비자 협동조합이나 지방자치 같은 것이다. 이런 건 우리 사회에도 이미 씨앗이 뿌려졌다고 볼 수 있는데.
=우: 분명 ‘맹아’는 있다.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 40만~50만 명가량 된다. 3인 가구를 평균으로 보면, 생협을 통해 식생활을 해결하는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지역경제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기존의 새만금식 개발주의가 있을 수 있고,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면서 농업·식품가공업·문화 등을 통해 지역경제를 키우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지역경제 측면에선 폴라니적 상상력이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이런 맹아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가 문제인데. 현재 한국 경제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시민사회나 자활 공동체를 모두 합해도 국내총생산(GDP)의 1%, 총고용의 5% 정도나 될까? GDP 10%, 총고용의 20~25%까지만 끌어올릴 수 있다면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홍: 지금으로선 난망한 일이지만 사회적 경제, 특히 생협운동 진영이 노조운동 쪽과 협력관계를 만드는 게 살길이라고 본다. 생협운동을 하다 보면 일정한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도시와 농촌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노동조합이 생협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된다. 노동자들이 생협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능성이 나올 수 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사회와 시장, 국가가 공존하면서 질서를 만들어가는 게 폴라니적 해법이다. 한 가지 더 있다면, 폴라니는 노동조합, 지방자치체, 소비자 생산자 조합 등 다양한 인간 집단의 내부적, 또 상호간의 활발한 의사소통과 연대가 인간적이고도 효율적인 경제의 필수 요소라고 보았다. 범진보 운동의 다양한 세력들의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그 어떤 하나로 전체를 통일시킨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면 현재와 같은 다급한 요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연대가 그렇게 먼 일만이 아닐 것이다.
=정: 폴라니의 이론은 사회경제를 생태적으로 변모시키는 데 필요한 이론적 자원이 될 수 있다. 그의 이론체계는 노동운동, 환경운동, 공동체운동, 기부운동, 시민운동, 진보운동을 모두 아울러서 배치할 수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특히 군 단위 풀뿌리 지역에서 사회경제(social economy)를 만드는 일은 위의 모든 운동이 힘을 합쳐서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또한 아래로부터의 성장이며 복지이다. 풀뿌리에 기반한 호혜성이야말로 아래로부터의 성장의 밑걸음이다.
-사회: 경제에서 시작한 얘기가 민주주의와 재분배, 사회적 다원성으로 확대된 느낌이다.
=홍: 루트비히 폰 미제스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활동이 합리적으로 이뤄지려면 적절한 가격이 결정돼야 하는데,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가사회주의자들은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폴라니는 시장도, 공산주의도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물품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추상적인 수치만 나올 뿐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얼마나 원하는지, 생산과정은 얼마나 고된지를 통계로 포착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토론이다. 경제활동 참여자 모두 가격이나 정부 관료에 의존하지 않고 토론을 하는 과정이 곧 폴라니식 민주주의다.
-사회: 그런 사회로 어떻게 하면 나아갈 수 있느냐가 문제일 텐데. 그 과정에서 저항도 만만찮을 것이고.
=우: 어떻게 이행하느냐는 내용은 폴라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하이에크 체제가 붕괴하지 않으면 폴라니식 체제로 갈 수 없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 자크 데리다 같은 이들이 ‘해체’를 말한 것은 아닐까? 위기의 시대, 폴라니가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 세계가 복지국가의 출현을 목도한 것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다. 어려운 시기가 좀더 계속될지도 모른다.
=홍: 폴라니가 여타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것은 인간의 도덕적·윤리적 선택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폴라니는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형제자매와 연대해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형상을 기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정치경제적 차이는 없다. 다만 윤리적 원칙이 다를 뿐이다. 이제 윤리를 말해야 할 때다.
정치란 철저히 경제와 분리된 사안이며 민주주의란 철저히 전자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고전적 자유민주주의의 사고 틀에 갇힌다면 인간 사회에 미래와 희망은 없다고 하겠다. 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나와 평등한 이웃이 실업과 빈곤과 인간 파괴를 겪는 현실을 외면하고 투표와 법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 무슨 기괴한 드라마인가.
폴라니는 산업사회의 기능성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가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망각하고 그 기능성의 톱니바퀴로 스스로 전락의 길을 선택할 위험이 크다고 보았고 파시즘이 바로 이러한 사태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인 것, 나아가 인간의 영혼과 가치라는 정신적·내면적 문제로까지 확장해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일 수밖에 없다.
무역에 대한 폴라니의 비전은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세계무역의 구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응당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질서가 만약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내에서의 국가적 개입의 강화로 나타난다면, 이는 필시 무역과 금융에 걸친 보호주의의 강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그들과의 관계에 경제의 작동을 크게 의존하는 비서구 나라들에 더욱더 큰 고통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시장이나 국가를 통해서만 실물과 화폐가 오고 가야 한다는 이분법을 벗어나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을 보게 된다면, 지리적인 인근 지역과의 경제적 협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게 된다. 폴라니가 그의 1945년 쓴 논문 ‘전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에서 발칸 지역의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경제질서로 지역적 계획경제를 이야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우: 폴라니 시스템에서는 대화와 이해와 같은 소통,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시 중요하게 대두된다. 민주주의라는 담론의 영역에서는 누군가를 뽑고 그에게 모든 결정을 일임하는 경직된 대의제 민주주의 체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스위스와 같이 직접민주주의를 상당 부분 정치 과정과 사회 과정에 복원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국민투표, 국민소환제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대화와 사회 구성원 사이의 논의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사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